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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부디 함께 고민할 수만 있다며-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편견이 안타까운 이유
관리자 2019-01-29
     조회 : 15
10대 후반의 소년이 외계인의 소리가 들리고, 학우들이 자신을 해칠 것 같아 두려워 부모와 함께 내원했다.
우주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다행히 짧은 입원 기간 동안 적절한 약물을 찾아 증상을 조절하였다.
학령기 환자의 치료에 학업의 지속은 중요한 요소이기에, 어느 정도 기능이 회복되었다는 판단 하에 이른 퇴원 계획을 세우고 외래 진료 예약을 잡았다.

학업과 외래 진료를 병행하는 동안 약 복용이 귀찮다며 불평하긴 했지만, 그는 잘 지냈다.
웃으며 친구들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곤 했다.
조현병은 뇌 내 도파민, 세로토닌, 글루타메이트 등 신경전달물질의 기질적인 불균형을 원인으로 보기 때문에,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증상이 호전된 이후에도 일정 기간 꾸준한 관찰과 약물유지치료가 필요하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자 소년이 병원에 오지 않는다.

해가 바뀌고 다시금 내원한 그와는 대화가 불가능했다.
눈 맞춤이 되지 않고 감정 표현이 현저하게 감소되어 있었다.
이해되지 않는 단어를 엉킨 문장 구조로 구사했다.
비전문가가 보아도 무언가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보호자를 통해 그간의 경과를 파악하려는데, 연신 눈물만 흘려 이 역시 어려웠다.

겨우 청취한 병력을 정리하자면, 소년의 할머니가 정신과 약물을 혐오했다.
치료 효용은 지금의 치료방법들보다 떨어지고 부작용은 많았던 과거의 약물치료 경험을 주위에서 들으셨던 것일까.
정신과 약물을 오래 먹으면 총기가 떨어지고 병은 똑같다는 주장을 펼치셨다고 한다.
치료를 지속하는 대신, 용한 점쟁이를 통해 굿을 하면 된다고 하였다.
비용은 수천만원을 호가했다고 한다.
처음 수개월은 오히려 치료받을 때 보다 잘 지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의학적인 관점에서는 당연한 수순으로, 점차 증상이 다시 발현되기 시작했다.

재발한 조현병은 첫 치료 시보다 고용량, 더 긴 치료 기간의 약물 치료를 요한다.
충분히 한 사회인으로서 기능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가, 부적절한 이유로 인한 치료의 중단으로 돌이킬 수 없는 악화 경과로 접어드는 경우도 많다.
다행히 그는 다시금 회복했다.








위 이야기는 팩션이다.
혹 상처가 될 수 있어 특정 환자의 이야기를 자세히 쓸 수 없기에, 기억나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고쳐 모아 만들어냈다.
현실은 한 편의 이야기보다 더 가혹하다.
비슷한 구조의, 각기 다른 여러 편의 이야기가 치료실에서 디테일만 바뀐 채 수없이 변주된다.
가장 가슴 아픈 사실은 현실에는 해피엔딩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지금도 떠오르면 안타까운 얼굴들이 있다.


현대 의학의 핵심은 근거다.
새로운 치료법이 도입되려면 이미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된 그간의 치료와 비교하여 결과가 우수하거나, 부작용이 적은 등 우월한 부분이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 까다로운 과정을 통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지에 대한 검증 과정을 거친다.
수세기에 걸쳐 정신의학은 더 나은 진단의 분류, 우수한 치료법이 과거의 지식을 대체하며 발전을 거듭했다.
하지만 여전히 완벽하지는 않다.
어쩌면 모든 의학의 분야가 마찬가지겠지만 무조건 완치되지만은 않는 질환, 완전하게 조절되지만은 않는 증상이 존재한다.

다른 신체 부위와는 달리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객관화 과정을 거친 여러 심리검사, 평가 척도들을 통해 마음을 정량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피검사, x ray, MRI 같은 수치, 시각화된 정보만큼 직관적으로 환자의 마음에 닿지는 않는다.
또한 일반적으로, 긴 시간 동안 형성된 심리 구조나 뇌의 생리 등을 점진적으로 교정해가는 정신과 치료의 과정은 일반적인 신체 질환의 치료 과정보다 길고 지난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치료자가 환자에게 어떤 질환이든 무조건 나아질 것이라 주장한다면 이는 도의적으로, 의학적으로도 맞지 않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이 마음의 아픔으로 고통받는 이의 입장에서는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다.
치료를 통한 변화가 주관적으로 느껴진다면 가장 좋겠으나, 시일이 흐르고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특별히 달라지는 부분을 느끼지 못하는 시기일수록 이러한 답답함은 가중된다.


완전히 틀린 오해도 존재하지만, 일부가 전체로 정의되며 발생하는 오해도 있다.

‘정신과 진료로도 힘든 마음은 뾰족한 수가 없다.’
‘약물 치료를 한 번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한다.’
‘부작용만 많고 나아지는 것은 없다.’

이같은 편견은, 빠르고 충분한 호전을 겪지 못한 환자와 보호자의 막막함, 의학의 원초적 한계로 정신의학 전체를 바라보며 형성되는 것은 아닐지.

그릇된 편견으로 조언을 하는 것은 칼을 빌려주겠다며 상대방을 찌르는 것과 같다.
왜곡된 시선과 근거 없는 견해는 누군가의 삶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피해가 의도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편견이 근거가 부족한 달콤한 결과 제시와 동반되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방법이면 씻은 듯이 좋아질 거야.’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100% 편해질 거야.’

선의로 포장된 독은 더욱 깊이 마음에 스민다.










단순히 마음먹는 것만으로는 홀로 해결하기 힘든 어려움들이 의외로 우리 가까이에 있다.
학부 때 조현병의 평생 유병률이 1%로 정도로 집계된다는 것을 알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한 반에 4~50명 정도의 학생이 있었는데, 산술적으로 생각하면 두 반의 학우 중 한 명은 해당 질환이 발병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단순한 우울 증상 수준이 아니라, 주요우울장애로 진단될 정도의 우울증을 경험할 확률은 조현병 이상으로 높다.
교과서적으로 주요우울장애를 평생 동안 한 번 이상 앓을 확률은 낮게는 5% 남짓에서, 많게는 30%에 이른다.
무조건 완치되는 질환은 아닐 수 있으나,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통해 고통을 크게 경감할 수 있는 질환들이다.
이 두 질환이 정신과에서 다루는 아픔의 전부가 아님은 물론이다.

익명의 힘을 빌려 털어놓는 웹 사이트 게시판의 사연, TV 프로그램에서 선정적으로 소비되는 마음의 고통, 어찌할 바를 몰라 속으로만 삭히는 혼란함...
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진료실에 모두 구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함께 고민하고 싶다.
도저히 극복하기 힘들 정도의 마음의 어려움, 아픔,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 사람들은 고민해 왔다.
그 고민의 총체가 정신의학이며, 홀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딛고 일어서도록 돕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힘든 이와 소통하고 함께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 정신과 의사의 역할이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모든 것을 자급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혼자서 머리를 만질 수도 있지만, 결혼식 전에는 미장원을 찾는다.
매일 외식을 할 수는 없지만 특별한 날에 어울리는 요리를 위해서는 맛집을 예약한다.
때때로 찾아드는 아픔을 의지와 노력으로 다독일 수도 있지만, 어찌할 수 없는 절망과 고통이 지나치게 깊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언제나 마음의 아픔으로 힘들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치유하고자 매진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아픔과 노력이 남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또 따뜻한 유산들이 있다.
이를 토대로 필요한 이들과 부디 함께 고민할 수만 있다면,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올리는 생각이다.
치유의 손길이 필요한 아픔에 올바른 위로가 닿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더욱더 자연스러운 일이기를 바라본다.